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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꿈의 서가/책 2018. 4. 19.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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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삶>
인간은 상황의 지배를 받는다. 이 이야기는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비극이다. 러시아의 그녀도, 러스트 벨트의 그도 원해서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선택지도 없어 보였다. 삶이란 이다지도 잔인하다.
<전쟁의 민낯>
톨스토이는 말했다. “전쟁처럼 악하고 소름 끼치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도 전쟁을 이해할 수 없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참극을.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미래로 이어지는 사이에도 같은 역사가 반복된다. 인류를 대를 거듭해서 서로 죽이고 약탈한다. 이는 어떻게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대체 전쟁은 왜 멈추지 않을까? 인간의 가슴에는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악의가 있는 것일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아니,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전쟁은 그 자체로 악하다. 시리아 공습에서는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죽었을까? 월남전에 참전했던 우리나라 군대도 민간인 학살을 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군대는 살인 집단일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군대를 비난하기 어렵다. 그들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이다. 인류가 모든 욕망과 폭력을 내면에서 제거할 수 없는 한은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일상의 평화를 누리며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군대는 결국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만들어 놓은 수단이다. 오늘도 그들의 보호 아래에서 잠든다. 과연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게다가 모두가 원해서 군대에 가는 것도 아닌데.
전쟁은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 전쟁에서 병사는 경계를 넘는다. 인간이 아닌 무엇이 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평범한 일상은 없다. 애국심이라는 거대한 신앙은 개인을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막이 내린 후에는 살아남은 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긴다. 단지 포로였다는 이유로, 적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는 이유로 변절자라고 한다. 여성이 군대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을 한다. 그래도 그들은 수많은 비극 후에 웃는다. “감사하자. 사랑하자. 살아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국가란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피눈물을 숨겨가면서까지 사랑하고 지켜야 할까?
승전국인 소련은 수많은 전쟁 영웅을 만들었다. 언론과 미디어, 사회가 칠한 화장이다. 나는 이 책에서 포장되지 않은 역사를 봤다. 역사의 민낯이 드러났다. 전장에서 그녀들처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전쟁 속 여성들의 모습을 봤다. 그저 슬프다. 과연 전쟁에 진정한 승리가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면 인간 자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진다. 나는 불가지론자다. 하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우리는 단지 어리석을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품어본다. 이러한 책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것. 전후의 독일이 계속해서 사과한다는 것. 우리나라 정부도 월남전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일군 포로와 부상병을 감싸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았다.
<자본주의의 민낯>
작가는 ‘레드넥’이라고 멸시당하는 백인 빈민층이다. 놀랍게도 인간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을 미워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인간 내면의 어둠을 의심해 본다. 책에서 드러난 힐빌리의 현실은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약물에 중독되어 살며,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삶. 보통으로 살기도 더럽게 힘들다. 나라면 “죽겠다. 죽겠다.” 했을 텐데, 작가는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글쓴이에게서 배워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그는 자신이 행운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사람이 쓴 감사의 글은 형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나에게 영향을 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의 삶을 지탱해준 가족들처럼, 내 가족들을 생각해본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겨주시는 부모님도, 형제도 있다. 어찌 보면 그보다 더 행운아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삶 그 자체에도 감사한다. 그리고 죽도록 성실하게 살고, 자신의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성하려 애쓴다. 본인이 가진 사회 인식의 한계도 인정한다. 나도 사회를 탓하기 전에 내 삶을 돌아봐야겠다.
소위 ‘수저 계급론’이라는게 있다. 어릴 때 분명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웠다. 그런데 날 때부터 ‘계급’이 나뉜다니. 나는 부자의 특권이 ‘실패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도전할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진정으로 평등한 삶이란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게 아닐까?
그나저나 책의 내용이랑 관계없는 추천사는 좀 빼는 게 어떨까?
<희망>
삶은 잔인하다. 비극이다. 그래도 결말은 열려 있다. 나도, 인류도 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빌어 본다. 두 책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처럼.반응형'꿈의 서가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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