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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도덕은 아니지만(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 확신의 함정)꿈의 서가/책 2019. 4. 18. 23:14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여기 호흡기를 때면 심장이 멈추고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생전에 연명 치료를 거부했다. 가족도 이 사람의 뜻을 존중한다. 이럴 때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에게는 자기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 의식도 없고 깨어날 가능성도 거의 없는 사람이라면 존엄사를 인정해야 할까? 나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안락사는? 편하게 죽을 권리도 있을까? 잘 모르겠다. 자살은? 나는 반대한다. 그런데 이 죽음의 방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인이 자기 죽음을 선택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는 이런 것들이 많다. 경계에 서 있는 문제들.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할까? 도덕은 개인의 양심에서 나온다. 각자의 자유가 충돌하다 보면 사회에는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 법은 결국 이런 문제들을 적당한 울타리로 둘러싸 놓은 것이 아닐까? 법과 도덕은 차이가 있다.
법을 지킨다고 해서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때도 있다. 삼성의 순환 지배 구조는 문제가 있다. 재벌이 자신의 부를 편법으로 승계한 좋은 예다. 그러나 법리로 다투어서 처벌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법의 허점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친다는 마음으로 개선되기는 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아직도 여러 방법을 통해 증여세를 회피하여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준다. 주식회사라는 간판을 달고 부끄럽게도. 그들이 양심에 따라 행동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그들만이 알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법과 도덕은 다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인들이라면 왼쪽 뺨을 맞고도 상대를 사랑하며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인이 아니다. 기본권이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 권리에 우위가 없다면 사회의 이익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육 기관은 사립이더라도, 설립자의 자유 보다 교육 기관의 공적인 기능이 우선 되어야 한다. 물론 이사진의 자유를 알맞은 의사 결정 구조와 정책으로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법은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법이 곧 도덕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 도덕관과 문화를 보여준다. 얼마 전 대법원은 태아 낙태를 합헌 불일치로 판결했다. 나는 이 결정에 찬성한다. 태아가 생명인지는 윤리의 영역이다. 내게 낙태가 옳은 일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지 못하겠다. 신체의 자유와 생명권이라는 중요한 두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다. 나는 이 문제는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나온 판례들은 후에 대법원에서 판결할 사건의 기준이 될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법이 그저 과거를 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를 반영하고 사람들의 양심을 반영하여 미래를 바꿔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확신의 함정
이 책은 쉽게 답할 수 없는 경계를 다룬다는 점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와 유사하다. 그러나 문제를 더 얕게 다룬다. 대신 더 넓게 다룬다. 책에 굉장히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작가는 법을 수호하는 사람은 선입견과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썼다. 작가가 전하려는 바가 내게 잘 전해졌다. 제시하는 사례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 그래서 더 다양한 관점에서 곱씹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각 글이 잘 엮여서 큰 생각으로 정리되거나 더 명확한 결론으로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책을 덮으며, 내가 가진 이념이나 가치관이 항상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책의 제목처럼 확신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그것이 옳든 아니든. 그것이 사람이 잘 어울려 사는 지혜이고 다수를 위한 길일 것이다. 그렇다면 법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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