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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꿈의 서가/책 2017. 12. 23. 00:59
섬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두 권을 책을 만났다. 반갑고 고맙다. 이 책들은 짧은 글의 나열이다. 나는 긴 글보다 짧은 글들이 더 좋다. 글의 여백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생각들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봤다. 그러다 그냥 두 작가처럼 이야기의 조각들을 주르르 늘어놓기로 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두 책을 하나로 엮어낼 자신은 없다. 그러다 보니 글이 섬처럼 따로 따로 떨어져 버렸다.
<삶>
인간이란 왜 태어나는가? 우리는 날 때부터 사명을 갖고 세상에 나지 않았다. 누군가 삶을 대하는 자세도 정해주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배워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나이를 먹으면 적어도 내가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그러니 남의 삶도 괴롭히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작가의 말처럼 떠나보고 비워 보자. 떠나야 돌아올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말과 글>
경박한 주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까? 나는 잡학 다식한 이가 좋다. 나도 그러고 싶다. 아니. 애초에 경박한 주제란 없다. 작가가 작고 사소한 일을 좋아하듯이 나도 작고 사소한 글을 좋아한다. 게다가 이 글들은 작으면서 사소하지 않다. 그래서 더 좋다. 글이란 언어로 만들어진 예술이다. 현재는 언어가 너무 경시된다. 그러니 말을 경시하지 말자. 사람은 죽어 사라지지만 말은 죽지 않는다. 이처럼 말은 소중한데 나는 이 말을 다루기가 어렵다. 내 말은 내 생각을 온전히 담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그래서 글을 더 좋아한다. 글은 말보다 애정과 배려를 담기 쉽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말이 비루하기 때문이지만.
<시>
시란 사라져가는 것들을 대필하는 것이라고 한다. 윤동주 시인도 말했다. “모든 사라져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시인의 숙명인가 보다. 반짝이며 사라지는 초신성의 폭발은 온 우주에 아름답게 퍼진다. 사라져 가는 순간의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내는 것이 시일까? 그렇다면 내가 쓰는 글들도 아름다운 유서 같았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더없이 평온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용서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고통>
우리는 평소에 반만 살고 있다. 보이지는 않는 달의 반대편과 같다. 달의 반대편에는 고통, 시련, 궁핍이 있다. 우리는 이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이것들은 때로는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달의 반대편을 보려면 그런 것들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일부러 더 곤궁해야 할까? 나는 대학생이던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일하러 다니면서 삶의 다른 단면을 들여다 보았다. 삶은 이미 그렇게 힘들었다. 작가의 말처럼 이미 참을 수 없는 부조리와 회의 속에 살고 있다. 나는 저절로 겸허해졌다.
<죽음>
때로는 남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나의 고통보다 크다. 내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이 남을 것을 알기에 세상을 떠나는 이는 슬프다.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죽은 이와 나누고 싶다.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없다. 슬픔은 우리의 몫이다.
<섬으로 가는 방법>
인간의 삶이란 외딴 섬에서 나와 외딴 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짙은 안개가 껴서 쉽사리 건너갈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섬으로 가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여행이다. 여행은 충만감을 준다. 마치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어째서일까? 인도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욕망과 집착, 현세를 버린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한다. 인도 사람들은 정치의 가치를 낮게 본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신만을 찾을 수 있는 고립과 소외의 삶을 산다. 마치 섬처럼. 진리에 다다르는 것은 세계와의 고립과 같다. 자신의 내면으로 온전하게 침전하는 것이다. 자신을 비워서 세계를 채우고 비로소 하나가 된다.
어릴 때 나는 나를 많이 원망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후회와 자책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 그러나 때로는 “삶”에서 벗어나서 나를 비우고 버리러 가야 한다. 삶에서 도망치는 일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다. 우리는 자신만의 섬에서 배를 띄울 용기를 내야 다른 섬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럴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은 그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섬으로 건너가는 또 다른 방법은 사랑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랑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사랑이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직 내가 너를 만나 너만을 사랑하니까. 다른 사람의 섬에서 나의 섬으로 돌아오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내게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나를 위한 변명이 하나 더 늘었다. 그것은 미련이 아니라 관계를 죽이는 과정이었다고. 그 관계가 덜 죽어 그렇다고. 우리는 섬과 같다. 상대에게 유일한 존재이고 내가 나에게 유일한 존재이다. 유일한 존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외에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울어도 소용없겠지만>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소중하다. 나는 혼자서 외롭지 않다. 그러나 아, 나는 고독했다. 혼자만의 시간은 고독을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그래. 우리는 모두 고아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그러나 가끔 같이 울어줄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다. 아프다고 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하지만 위로라도 받아 다행이다. 울음 사이로 숨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슬픈 와중에 삶은 파도처럼 덮쳐온다. 다시 내 섬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해야겠다.반응형'꿈의 서가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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