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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으로 선택하는 인간꿈의 서가/책 2023. 12. 28. 05:18
이기적 유전자
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이 책은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끌어내려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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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진화는 한 종의 형질이 세대를 거듭하며 생존에 걸맞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는 집단이 이익을 얻는 방향을 향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킨스의 말에 따르면 진화는 종이 아닌 개체가 이익을 추구한 결과다. 이 개체는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기계다. 유전자는 끝없이 자신을 복제하여 생존하려고 한다. 그래서 유전자는 이기적이다.
유전자는 불멸을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 유전자가 선택한 방법은 모순되지만 재밌다. 대부분의 유전자는 자신의 전달자가 적당한 시기에 죽도록 설계한다. 체세포는 복제 횟수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이 횟수를 다 채우고 나면 생물은 죽게 된다. 좋은 형질이 선택되고 돌연변이가 일어나려면 많은 번식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물은 생명이 유한하다. 마치 유전자가 의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도킨스가 말한 것처럼 유전자는 의지가 없다. 진화는 그저 결과다.
그래서 나는 ‘유전자 만능론’을 경계한다. 인간의 모든 것을 진화 생물학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작가도 이를 경계한다. 진화 생물학은 큰 틀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 의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은 음악, 회화와 같은 예술을 즐긴다. 심하게 말해서 예술은 생존에 쓸모가 없다.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소수를 제외하면. 정서적 만족이나 행복을 얻으니 생존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그 시간에 ‘경제적으로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행위를 한다. 꼭 내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개체의 최대 목표는 생존과 유전자의 전달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때로 아무런 이해 타산 없이도 스스로를 희생한다. 소방관은 불이 난 집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이 뛰어든다. 물에 빠진 사람을 발견하면 반사적으로 물속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나와 전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개체는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앞의 행동은 유전자의 입장에서 매우 비합리적이다. 유전자는 과거에 생존했던 환경을 바탕으로 손익을 계산한다. 앞선 행동을 했던 유전자를 가진 개체는 거의 모두 사멸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적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의 자유 의지와 사회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유기 동물을 데려다 키우는 것은 생존에 어떤 도움이 될까? 주변 사람들에게 선인으로 보여 원만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이 뿐만이 아니다. 책에서는 자식을 키우는 행동을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투자로 설명한다. 만약 어린 자식과 나이가 많은 자식 중 한쪽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이가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 나이가 많은 쪽에 치른 비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는 다르다. 재난이 발생하여 일부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약자를 구한다.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가 집단의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설명하면 역시 할 말은 없다. 그렇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마음만 먹으면 진화 생물학에 끼워 맞출 수 있다. 모순이 있는데도. 의문이 가는 현상은 또 있다. 친족 살해는 과연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한가? 가정 폭력은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전달하는데 어떤 이익이 있는가?
진화 생물학이 인간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는데 동의한다. 이 책에 쓰인 도킨스의 말에도 거의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이론으로 모두 담아내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내가 유전자 만능론을 경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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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생물학자이자 현대 지적논쟁의 최전선에 서 있는 리처드 도킨스가 광적인 신앙을 비판한 책. 초자연적 지성이 있다는 신 가설에서 신이 만들었다는 태초 우주까지, 창조론의 주요 쟁점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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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도 유전자 처럼 사람들 사이에 전달되고 자기를 복제해 왔다. 도킨스의 말처럼 종교를 선택한 아이는 없다. 종교인의 아이만 있다. 나는 어릴 때 교회를 다녔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따라서 다녔다. 지금은 어머니도 나도 종교가 없지만. “오류동 남부 교회~”로 시작하는 노래가 기억난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오고 나서는 초등학교 친구를 따라 교회를 나갔다. 크리스마스에 벨트를 풀며 ‘베들레햄’을 외치며 연극도 했다. 그 친구와 상대성 이론 책을 사러 종로 서점을 간 적이 있다.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불확장성 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한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비유의 대상이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인격신을 믿지는 않은 것 같다. 범신론자에 가깝다.
나는 진화론을 믿는다. 진화론을 증명하는 증거는 매우 많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진화론을 지지한면서 인격신을 믿는 것은 어렵다.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이 하는 재밌는 주장이 몇 가지 있다. 지층 속의 랩터 화석은 흔히 진화론의 증거다. 그런데 이들은 이런 화석도 신이 이미 만들어 둔거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업적이 의심 받도록 일부러. 심지어는 어제까지 내가 가진 기억은 모두 신이 만들어 둔 것이고. 나는 오늘만을 살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여러 경전의 이야기도 거짓된 증거가 될텐데.
진화는 결과다. 자연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개체는 생존에 알맞은 형질을 가진 것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다른 생물보다 더 뛰어나다고 주장할만한 근거는 없다. 우리는 물 속에서 3분 이상 생존 할 수 없다. 고등어 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가? 진화에는 우위가 없다. 그렇다면 신이 반드시 인간 같은 형태여야 할까?
나는 종교는 주장이 아니라 취향이라고 본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다면 개인의 믿음을 금지할 근거는 없다. 종교 자체가 나쁘다는 도킨스의 입장은 동의하기 어렵다. 종교는 권력과 결탁하여 나쁘게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근원적인 선의 준거가 되어 우리가 선을 행하는 좋은 핑계도 되어주었다. 나쁜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지적하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의 문제는 고민해야 한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는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각자의 교리에 따라 대립한다. 때로는 전쟁을 벌이고 서로를 죽이기도 한다. 본인의 종교가 존중 받으려면 남도 존중해야 한다.
나는 불가지론자이다. 사실 신이 존재하는지 관심이 별로 없다. 없다고 해도 내가 불행하지는 않을 것 같다.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인간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인간이 설명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닐 거다. 진짜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서 인간을 만들었다면 신은 전능하지 않다. 현생에 지옥을 펼쳐 놓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신이 모른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신이 있다는 없다는 증거를 발견한지 못하는 한은. 이 책의 많은 부분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완벽한 무신론자가 되지는 않았다. 지금 처럼 회의적인 불가지론을 유지할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의 선함에 절대적인 원칙이 없다고 해도. 단지 생존에 유리하게 선택된 형질이라도 좀 더 이타적으로 살아야 겠다. 어쩌면 이 것도 나의 믿음의 영역이니 일종의 종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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