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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내게 말했다 그거 병이야 병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 약도 없는 병 집에 오는 길에 또 얻은 열병 집을 뒤져 봐도 없는 약병 어느새 잊지 못하는 병 어느덧 하얀 겨울의에 검게 가라앉는 심해 속에서 홀로 하얗게 끓어오르는 병 눈이 멀어버릴 병 혼자 낫지 못하는 병 얻은 열병 없는 약병 다시 집을 나서 병원으로 간다 병원 앞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이건 병이야 병 약도 없는 병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
싫었던 것은 싫었던 것이라고 좋았던 것은 좋았던 것이라고 지는 노을을 붙잡고 외쳐봐도 하염없이 밤이다 눈을 감고 수면 아래로 잠이 내려 앉으면 싫었던 것도 좋았던 것도 또 내일 저녁 노을을 붙잡고 외치려고 안으로 외치면 어느새 또 오늘
사라지는 것들 사라져 버린 것들 사라져야만 하는 것들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들 생각할 때 가라앉는 차가운 마음 무거운 마음 위로 떠오르는 뜨거운 마음
빗속에 우산이 없는 사람에게 피할 나무를 내어주는 산처럼 내게 따뜻하게 내밀어 주는 손
2년, 이년 만에 어머니가 남겨두신 간 마늘을 다 썼다. 대신 마트에 주문을 넣었다. 아무리 작은 흔적이라도 이리 오래가고, 아무리 큰 사람이라도 이렇게 짧다.
그립다 그대가 그리운 그대를 그리다 그렇게 그래 다 그리 다 잊겠지
모든 우산이 주인의 손을 붙잡고 가는데 오직 한 우산이 버려져 있다 손을 놓았다 놓지 않으려 했으나 놓아 버렸다
바지에 내 비욱한 맘을 욱여 넣어본다 싸매고 싸매어도 툭 튀어나오는 무릎처럼 비죽 새어나오는 나태를 신음하는 단추들 사이로 감추어도 하루만큼 더 절룩거리는 몸을 옷으로 잡아 끌며 힘겹게 눈을 감았다 뜬다 느리게 깜박인다 여섯시간 만에 눈을 떠보니 나도 모르게 세상에 던져진 헐벗은 마음만큼 부끄러운 이 몸은 짜여진 관으로 서둘러 돌아갈 짜여진 삶에 나는 굴종하지 않으리라 말하며 다시 굴종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