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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꿈의 서가/한 평 극장 2017. 10. 5. 20:22
2017년 개봉 작. 황동혁 감독 작품.
우리 역사 최대의 굴욕인 병자호란. 청의 대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은 인조와 조정의 47일을 담은 영화.
서로 상반되는 두 충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주화파인 최명길과 척화파인 김상헌의 대립이 추를 이룬다.
국사책에서 병자호란을 배우면, 조정의 대신은 명을 섬기느냐 청을 섬기느냐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유로 대립했다고 배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친명배청을 현실의 문제로 다룬다. 당장의 생존을 강조하여 현실주의를 내세우는 최명길과 죽음으로 라도 지켜야 할 가치를 강조하는 김성헌. 관객은 둘 중 어느 것이 옳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역사에서는 명이 망하고 청이 중국을 통일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 하지만 명이 망하지 않았다면? 아니 그 이전에 명이 망한다고 버리는 것은 옳은가? 척화파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단언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인간은 의롭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목숨을 던지지 않는가.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불합리한 행동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안 된다.
최명길은 인조에게 항복을 권하면서 스스로를 역적이라고 칭한다. 그러나 그를 매국노와 비교할 수 없다. 최명길은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가 없었더라면 나라가 없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는 항복하는 임금의 곁을 지키며 진심으로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인도한 길때문에 임금이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성헌은 스스로의 길을 지키려고 자결한다. 그러나 그의 길도 크게는 최명길과 다르지 않았다. 백성과 나라를 지키려는 큰 뜻은 최명길과 다르지 않았다. 최명길과 나눈 최후의 대화에서는 역성혁명을 논한다. 길이 달랐을 뿐 둘의 목적은 같았다.
이 영화에는 다른 사극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스펙터클한 전쟁신이나 개그 코드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을 기대하면 재미가 반감하는게 사실. 생각해 보면 47일간 수성만 하다가 홍타이지 앞에서 인조가 삼배고구두례를 하는 치욕을 다룬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있을 리가. 영화는 무력한 상황에서 발버둥치는 허무주의의 색채를 띤다. 이 영화의 재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의 답을 끊임없이 고민하는데 있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간이 산다는 것과 올바르게 산다는 것 중에 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이렇게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이유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연출 덕이다.
연기와 연출 외의 요소도 훌륭한 영화다. 최명길과 김성헌의 복색의 색상은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거기에 홍타이지가 항복의 표시로 인조에게 청색 의복을 입게 한 것도 연결된다. 청색은 청을 백색은 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도 백도 결국 고귀한 색이다. 앞서 말했 듯 둘의 목적이 다르지 않았기에. 음악은 사카모토 류이치. 영화 초반에 음악 담당을 따로 때어 아주 길게 보여주는데 그럴 만한 사람이다. 귀가 즐겁고 눈도 즐겁고 수많은 생각을 하느라 즐거운 영화다.
추석에 보기 좋은 가족 영화라고 하기에는 묵직하다. 그러나 그런 묵직함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서로 옳은 소리만 하면서 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제대로 만든 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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