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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을 봤을 때와 보지 않았을 때의 차이 (이와 손톱 + 모든 것이 F가 된다)(스포주의)꿈의 서가/책 2018. 12. 24.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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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손톱
채 한 장을 다 읽기도 전에 생각했다. ‘영화를 보지 말걸.’
영화는 해방 직전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우리나라를 너무 화려하게 묘사했다. 왜일까 했는데, 에 묘사되는 옛 미국이 너무 발전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에 전기 포트가 등장한다. 현대 작품에서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은 물건이다. 당시에 우리나라는 굉장히 피폐했다. 이 소설은 서술 트릭을 사용한다. 그러나 나온 지 워낙 오래되었기 때문에 너무 정직하다. 초반부만 읽어도 결말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그래서 서술 트릭보다 그린리프가 유죄를 선고받는 과정이 더 흥미롭다. 속속 드러나는 증거와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공방이 재밌다. 물론, 책이 처음 나온 시기에는 서술 트릭 자체도 신선했겠지만. 영화는 그 법정극의 맛을 못 살렸다. 그리고 이야기를 너무 비극적으로 만들려다 보니 애매한 로맨스를 넣고 멋진 남자 만들기에 신파를 넣어서… 차라리 원작처럼 둘의 관계가 확고한 게 더 낫지 않나? 물론 고수는 멋있다만.
모든 것이 F가 된다
작품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읽었다. 제목의 F가 대체 무엇일까 계속 고민하면서 봤다. 이 주인공은 탐정이 아니다. 그래서 건축학과 조교수가 연쇄 사건을 시원하게 해결할 것 같지 않았다. 걱정대로. 작품이 종반까지도 시원하게 해결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교수는 혼자 끙끙거리고. 증거나 단서도 거의 없다. 결국, 논리적 추론보다는 추정과 직감으로 맞춰 나가다가 우연한 계기로 문제를 푼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게 맞겠지. 밀실에서 말도 안 되는 살인이 일어났다. 아무런 단서도 없고. 범인의 행방이 묘연한 이유는 본인이 밀실의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면 천재 탐정이 뾰로롱 등장하여 짜잔 푸는 게 더 이상하겠다. 차라리 현실 같아서 좋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트릭과 범인의 동기와 사상은 공감하기 어려웠다.
우선 범인이 밀실을 만든 트릭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내게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그래, F는 그것이었다. 트릭은 정수 오버플로우. 분명히 이 연구소에는 최고의 능력자들만 모였다고 했는데? 변수 타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은 기초적인 실수 아닐까? 그러나 1999년에 화성 탐사선이 단위 계산 착오로 추락한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이 프로젝트도 정말 뛰어난 인재가 모여 진행한 프로젝트였으니까. 프로그래머는 코드로 소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남의 코드에 무관심한 사람도 많다. 코드가 너무 복잡하다 보면 어이없는 실수가 나오기도 하고. 실제로 나도 그러니까. 1994년이 배경이니까 형상관리가 제대로 안 되었을 수도 있겠다. 현실 같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천재를 묘사하는 방식과 실존주의를 대하는 태도는 별로였다.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로 사람을 셋이나 죽이는 행동과 생존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같은 선상에 놓고 설명한다. 다른 생명이나 존재를 희생하기에 차이가 없다는 논리다. 선악을 고민해 보고 의도하지 않게 다른 존재를 희생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라는 뜻이었다면 좋았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마치 조금이라도 선하게 살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도덕과 법은 왜 필요할까? 책에서 묘사되는 천재는 순수하다. 그래서 선악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가 동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인은 그저 살인할 수 있어서 살인한다. 이런 흐름으로 서술된 범인의 사고방식과 동기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개미를 쉽게 짓뭉개버릴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하지 않는다. 상대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카타 박사는 그런 노력도 의지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사는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니 그런 불합리를 끝내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자살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묘하게 비뚤어진 실존주의다. 박사가 정말 합리적이고 순수하게만 사고한다면 자살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천재가 아니라 사이코패스 같은데.
영상화된 작품에서는 과연 이런 아쉬운 점을 잘 보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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