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까리기/작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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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뇌까리기/작은 목소리 2021. 11. 1. 00:50
왜 빤히 쳐다보는 거야? 묻는 천장에게 한참을 잠을 이루지 못하다 쳐다보다 대답한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가는데 왜 치열해야 하는지 고민이야. 이제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 다시 되물으며 이렇게 손을 뻗어도 너에게 닫지 않는데 창문을 열어봐도 사막일 것만 같아. 아니면 설원이거나 나는 눈앞의 네게도 바로 연결되지 못하는데 연락이 끊긴 그는 바람에 실려가는 모래먼지나 재투성이 눈송이를 보려 그는 창을 열어 나를 볼까? 오늘도 창문에 던지려 치열하게 다시 돌을 빚어 보지만 다시 녹아내려 빤히 쳐다보면 어느새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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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설뇌까리기/작은 목소리 2021. 11. 1. 00:50
청소기를 돌린다. 내내 먼지는 내게 증명한다. 여름의 부재를. 하얗게 쌓여가는 풍경에 잊힌 가을을. 전동기는 소리 지른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여름의 햇빛과 가을의 바람으로 재가 되어 시간은 소리 질러본다. 그러나 이내 질려버린 시간은 침묵으로 증명한다. 당신의 부재를.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청소기를 다 돌린다. 내내 풍경은 내게 하얗게 쌓인다. 내 머리위에 까만 오늘을 밀어내고. 무겁게 살며시 떨어진 시간은, 부재하는 계절은, 털어낸 풍경은. 새하얗게 내일을 몰고온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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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뇌까리기/작은 목소리 2021. 11. 1. 00:49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소. 그러나 사람은 평생을 잘못 살며 후회하면서 사는데 후회라는 것을 해 본 적 없는 나는 잘 맞는 시계가 아니요? 그러니 나는 당신보다 덜 미친 거지. (오늘 너무 … 했다. 정신 차려.) 하나만 묻겠소. 빨강과 노랑의 경계는 어디요? 주황? 그렇다면 다시 빨강과 주황, 다시 주황과 노랑의 경계는 어디요? 대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아오. 나와 당신의 경계가 이렇소. 경계가 이렇게 흐릿하니 나는 당신보다 더 미친 것은 아니지. (뭐가 무엇인지 … 모르지.) 말장난이라 하겠지. 맞소. 세상은 장난이요. 날 때도 죽을 때도 우연을 따를 뿐이니. 당신과 나나 얼마간 진지하려 해도 주어진 것도 거두어 가는 것도 운에 맡겨질 뿐이요. 던져지고. 버려지고. 다시 돌아갈 것이오.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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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뇌까리기/작은 목소리 2021. 1. 4. 23:53
감자의 흉으로 싹이 트듯 지문처럼 갈라진 구덩이에는 새살이 차오를 거다 가을이 지나면 죽은 잎은 눈을 덮고 다시 줄기를 통해 하늘을 만날 날을 기다릴 거다 죽어버린 눈은 까맣게 타버린 살을 녹여 푸른 하늘로 돌아갈 거다 그렇게 다 괜찮아 진다 나의 모진 말도 너의 낯선 얼굴도 다시 봄이 오면 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벚나무 가지에 꽃이 내려 앉듯이 개나리가 가지를 타고 봉오리를 오르듯이 우리는 흘러 갈 것이고 어쩌면 다시 만날 것이다 뜨거운 바람이 내 두 눈을 말릴 즈음이면 아마 아마도 다 괜찮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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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뇌까리기/작은 목소리 2021. 1. 4. 23:53
두 귀에 안개가 드리우고 두 눈에 폭풍이 들이친다 하늘은 무너진다 당신의 마지막과 같이 쿵 가라앉는 먹구름은 비를 뿌리고 천둥이 울리고 먼저 번개를 앞세우고 빛나고 사라지는 삶 열렸다면 언젠가는 닫히는 문 앞에서 벙어리로 태어나고 귀머거리로 태어난 것처럼 말 하나 하지 못하고 들리지 않지만 외치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지려 서둘러 서둘러 울고 붙잡아도 서둘러 매달려도 이제 무거운 문을 닫고 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에 열 때까지 천둥이 울리고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는 먹구름 속으로 어두워지는 하늘이 무너지고 무너졌다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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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그리며뇌까리기/작은 목소리 2021. 1. 4. 23:52
당신과 함께 한 하루만큼 이별도 하루 더 가까워져 버렸다 은행 수납을 기다리는 번호표처럼 우리는 이별을 그리며 나의 하루가 나의 유서 나의 발자국은 나의 삶 삶의 길이 죽음으로 향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별을 그리며 물밖으로 튀는 죽음은 삶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리고 다시 삶으로 가라앉는 죽음의 몸짓 절벽 앞에서 방향을 틀어 바라보면 펼쳐진 넒은 세상 파도가 탄식하고 바람이 우는 곳을 돌아보며 접수대의 번호표가 뚝 떨어져 휘날리는 세상으로 다시 삶을 어느 정도 출납하고 죽음을 납부하며 살아가야겠다 지난 나에게 배워 오늘에 닿았다 이별 후에 만남이 삶 후에 죽음이 죽음 후에 삶을 그리며